- 요나 -

Posted by 김간사
2015. 6. 15. 15:37 Bible Insights


김집사의 Bible Insights
- 요나 -

7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요나 4:7~11)


특새 첫 주차 말씀은 요나서였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많이 듣고 잘 아는 이야기였지만 말씀과 다른 인사이트가 있어서 나누고자 합니다.

잠깐 요나서 스토리를 짧게 이야기 하자면..
요나 선지자는 니느웨의 죄악이 하나님 앞에 상달 되어 회개를 외쳐야 하는 사명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니느웨에 가기를 싫어합니다.  원수의 나라에 회개를 외치는 것이 무엇보다 싫었기 때문입니다.
자아가 아직 살아있는 선지자의 모습이죠.

하나님 얼굴을 피해 다시스로 도망치는 선지자 요나..
그러나 큰 폭풍우를 만나고 그는 바다 가운데 던져지는 운명을 맞습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고통 가운데 그는 하나님께 깊이 회개하고 다시금 그의 사명을 받아 들입니다.

물고기가 자신을 육지로 토해내는 기적을 맛본 요나 선지자..
이쯤 되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완전히 변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회개했어도, 하나님을 진하게 만나 사명을 발견해도, 옛 사람의 모습은 질기게 남아 있습니다.
사흘 길을 다녀야 다 돌 수 있는 큰 성읍 니느웨를 요나는 하룻길을 다니며 니느웨 성의 멸망을 외칩니다.
하기 싫은 일을 대충 억지로 한 것이죠.
그러나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희한하게도 왕으로부터 짐승들까지 모두 자신을 겸비하고 재 가운데 하나님께 회개하며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자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내릴 재앙을 거두십니다.

니느웨의 멸망을 기대했던 요나는 하나님께 말도 안되는 성을 냅니다.
이럴 줄 알았다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용서해 주실 줄 알았다고..ㅠ  우리의 원수를 어떻게 용서해 주실 수 있냐고..ㅠㅜ
그래도 요나는 니느웨가 어찌 되는가 성 밖에서 지켜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 유명한 박넝쿨 예화를 통해 요나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요나 4:10~11)
그리고 이 짧은 성경은 끝이 납니다.

보통 많은 성경학자나 목사님들이 요나서를 말씀하면서 회개의 메시지에 주목하십니다.
원수도 회개하면 용서해 주시는데, 왜 나의 백성들은 회개하지 않느냐? 그 말씀이 이 성경이 쓰인 목적이라 하십니다.
물론 그 말씀이 맞습니다만 저는 도대체 누가, 어떤 사람이 이 요나 선지자를 이렇게 실날하게 디스하면서 성경을 썼는지 궁금했습니다.
아무리 요나가 억지스럽고, 고집이 세고, 완고한 사람이지만 선지자를 어떻게 이렇게 욕보일 수 있는가?

헌데 놀라운 사실은 요나서의 저자가 바로 요나 자신이라는 사실입니다.
젊은 날.. 하나님의 사명을 받고 하나님께 자신을 드렸어도 본인이 싫은 일은 하기 싫은 것입니다.
물고기 뱃 속 같은 큰 고난을 통과하고 다시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해도 원래의 본성은 좀처럼 변하기 힘든 것입니다.
억지로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기는 했지만 하기 싫은 일은 회개 후에도 끝까지 어쩔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박넝쿨 에피소드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은 생명 사랑을 말씀하셨지만, 그 당시 요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들면서 깨달아지는 하나님의 마음..
어쩌면 요나는 자신의 젊은 날 치기와 완고함으로 똘똘 뭉친 자아가 얼마나 쓰레기였던가를 깨달은 것 같습니다.
험한 세월을 다 보낸 후 나이 드신 요나 선지자는 회고록 같은 자신의 선지서를 통해 결국 "하나님은 생명 사랑이다!!"라는 메시지를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요나는 젊은 날 자신의 삶을 셀프디스(self diss)하며 자신을 깎아 내리는 회고를 통해 인간의 완고함에 가려지는 하나님의 생명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 생명 사랑을 말하는 것이 그의 전 인생을 통해 후세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였을 것입니다.

저에게도 나와 다르다고, 나의 원수가 되었다고, 나의 편견을 하나님께 완고하게 피력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봅니다.
나의 모든 판단의 기준이 과연 생명에게 촛점이 맞춰져 있는지 다시금 살펴봅니다.
요나 선지자가 자기 자신의 존재 자체를 깎아내리면서까지 전하고 싶은 생명 사랑 메시지가 바로 나에게 주는 메시지가 아닌지 돌아봅니다.
그 생명 사랑이 내 속에 있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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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질감 -

Posted by 김간사
2015. 6. 14. 10:40 Bible Insights


김집사의 Bible Insights
- 동질감 -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립보서 2:5~11)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셨지만, 최고의 선물은 이 땅에 우리와 같은 몸으로 보내신 예수님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천상의 확보된 영광을 내려놓고 이 땅에 친히 피조물의 모습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저 피조세계를 바라보시고 "아이고 불쌍한 것들~~"하며 불쌍히, 긍휼히만 여기신 것이 아니라 몸소 그 피조물이 되어서 우리와 함께하신 것입니다.
자신이 누리는 기득권을 먼저 내려놓는 낮아지심을 창조주께서 먼저 보여 주신 것입니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브리서 4:15)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셨기에 우리는 예수님께 우리의 모든 속사정을 다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우리가 당하는 삶 또한 위로해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와 다른 분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기득권을 내려놓고 낮아짐으로 누군가를 도와줄 때 우리는 그에게 감동과 감사, 동질감을 느낍니다.

세월호, 메르스 사태..
우리와 이질감이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다스리기 때문에 우리가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를 다스리고 우리의 왕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우리의 삶을 이해하고 우리를 사랑하는 분이어야 합니다.

가장 낮고 천한 자의 친구가 되어 주고, 그들과 함께하셨던 분처럼..
실제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의 집권자가 되어줄 사람들도 우리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장 약한 자를 품고 우리의 삶 가까이 있는 사람이 되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이 땅에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마태복음 10:43~44)

그런 섬기는 삶으로 사는 인생이 되길 원합니다.
그리고 그런 섬기는 자를 가장 가치 있는 삶으로 여기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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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열매 -

Posted by 김간사
2015. 6. 11. 10:23 Bible Insights


김집사의 Bible Insights
- 좋은 열매 -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태복음 7:15~20)


나무의 열매는 그 나무의 정체성을 말해 줍니다.
사과나무는 사과를, 배나무는 배를, 포도나무는 포도를 맺습니다.
나무만 보아 그 나무를 알 수 없을 때 우리는 그 나무의 열매를 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의를 외치며 옳은 소리, 듣기 좋은 말만 한다고 좋은 사람이라 할 순 없습니다.
그가 이웃의 기쁨이 되고 있는지, 누군가의 어려움과 슬픔을 감당해 주는 사람인지, 그로 인해 누군가가 행복해지는지..
그런 그의 삶이 그를 말할 때 그는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그로 인해 공동체가 어려움을 당하는지, 그로 누군가에게 근심과 아픔이 되는지, 그가 이웃에게 무거운 짐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그런 평가가 그의 주변에 있다면 과연 그는 좋은 나무라 할 수 있을까요?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나무가 되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누군가가 쉬어 갈 수 있는 여유와 평화를 제공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나로 인해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더 많은 것을 나눌 수 있는 넉넉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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