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사밧: 1개의 글

- 평화주의자의 실수 -

Posted by 김간사
2013. 11. 11. 13:18 역대기 이야기


김간사의 역대기 이야기 2
- 평화주의자의 실수 -

 

여호사밧은 아사 왕의 뒤를 이어 태평한 유다를 이끌었던 솔로몬 다음의 네 번째 왕입니다.
그는 아버지 아사 왕의 젊은 시절과 같이 하나님을 온전히 따랐고, 모든 국고성을 견고히 세움은 물론 모든 일들을 다윗 시대와 같이 하나님께 묻고 행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어 그 나라를 그 손에서 견고하게 하셨고 주변 모든 나라들로부터 여호사밧을 두려워하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그의 시대를 부귀와 영광이 극에 달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평화주의자여서 동족인 북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고 그들과 정략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당시 북이스라엘의 집권자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하나님께 패역의 절정에 달했던 아합 왕이었습니다.
아합은 자신의 딸을 여호사밧에게 보내어 여호사밧의 아들과 결혼하게 하는데 이 자부로 거둬들인 사람이 바로 악녀 아달랴입니다.

여호사밧은 아마도 조상 다윗과 같이 이방신을 섬기는 나라를 멸하기보다 솔로몬과 같이 외교로 협정 맺는 방법을 선호했던 모양입니다.
그는 왜 하나님께서 그 조상들을 종 되었던 애굽 땅에서 건져내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라고 하신 정확한 목적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피 흘리기 보다 인간적인 방법인 평화적 외교로 인본주의를따랐던 게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시대에도 타협할 것이 있고, 정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죄는 결코 우리가 타협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결단하고 끊어야 할 대상입니다.
그의 이 같은 안일한 인본주의적 결정이 후대에 엄청난 민족의 피 흘림과 영적 기강이 흔들리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습니까?

그러던 어느 날 아합은 여호사밧에게 길르앗라못을 함께 치자는 제의를 합니다.
길르앗 라못은 요단동쪽의 수리아 땅으로 이스라엘의 지정학 적으로 중요한 요지입니다.
후에 이 땅이 앗수르, 지금의 내전으로 신음하고 있는 시리아 땅이 되고,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는 다메섹(다마스쿠스)이 나라의 수도로 있는 땅이 됩니다.

경건한 여호사밧은 이 전쟁을 하나님께 물어보자고 건의하는데, 이에 아합도 동의 합니다.
희안한 것은 북이스라엘에 400명의 선지자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아합의 시대에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싸웠던 주옥같은 엘리야라는 걸출한 선지자 한 명만 있는 줄 알았는데 놀랍죠?
하지만 이 선지자들은 모두 하나님께 버림 받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소위 하나님의 선지라라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합 왕에게 길한 예언만 합니다.
"올라 가소서.  하나님이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하지만 여호사밧은 남은 선지자가 더 있는지 다시 묻고 아합은 매번 자기에게 흉한 예언만 하는 선지자가 하나가 있으나 안 듣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그를 불려 올립니다.

이 때 그들 앞에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라는 선지자가 서게 됩니다.
그는 왕들 앞에서도 당당하며 두려움이 없는 온전한 진짜 선지자 였던 것 같습니다.
그는 아합에게 한번 싸워 보시라고 하며, 이길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아합이 그의 거만한 태도와 비꼬는 말에 짜증을 내자 미가야는 비로소 하나님이 자신에게 보여주신 천상에서 벌어진 일들과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이미 아합 편에서 여호와의 선지자로 인정함 받고, 항상 길한 예언으로 아합의 신임을 받던 기득권층인 거짓 선지자 시드기야가 분노하며 미가야의 뺨을 치며 모욕합니다.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말미암아 가서 네게 말씀하더냐??"
웃기죠?? 결국 미가야는 옥에 갇히고 맙니다.

이에 거짓 선지자의 말을 듣고 올라간 길르앗라못 전쟁에서 아합은 꾀와 속임수를 쓰지만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아합의 죽음 가운데서도 여호사밧은 무사히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나 선견자 예후가 그의 앞에 나타나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가하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서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하나님은 여호사밧의 유다를 징책 할 도구로 모압과 암몬과 여러 연합군을 택하십니다.
아무리 견고했던 여호사밧의 유다라 할지라도 이렇게 많은 연합군이 치러 올라오니 감당할 수 있었겠습니까?
두려움 가운데 여호사밧은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을 공포하게 됩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전에 유다의 모든 사람들 곧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긍휼을 구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여호사밧의 기도는 온전히 하나님의 주권과 권능을 인정하는 기도, 여호와의 언약을 의지하는 기도, 긍휼을 구하는 기도가 절절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도는 이렇게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자 우리 마음 약하신 하나님께서 그 여호사밧의 겸비함을 보시고, 간구를 들으시어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말씀을 대언케 하십니다.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여호사밧은 이 큰 전쟁에서 적들이 자기네들끼리 싸우는 하나님 역사하심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서로 죽이고 죽는 전쟁터에서 남은 전리품을 가져오는데 사흘이나 걸렸다 합니다.

이렇게 겸비했던 여호사밧.. 끝까지 악인과의 교제를 끊었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악인과의 교제를 싫어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서도 여호사밧은 아합의 아들로 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왕이 된 아하시야와도 계속 교제를 이어갑니다.

여호사밧은 역대기에 선한 왕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결정과 치리함이 인본주의, 평화주의적 결정이 아닌 온전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결정을 하였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늘 하나님께 모든 것을 물어보고 응답을 받지만 정작 결단을 내릴 때 인간관계와 정으로 인해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는 악습이 있다면 말씀 안에서 끊을 수 있길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은 항상 겸비하고 회개하는 상한 심령을 기뻐하십니다.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잃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의뢰하시는저와 여러분 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