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기 이야기: 6개의 글

- 말씀의 위에 굳건히 서 있는 자 -

Posted by 김간사
2013. 11. 11. 13:35 역대기 이야기


김간사의 역대기 이야기 7
 - 말씀의 위에 굳건히 서 있는 자 -


유다 왕 요시야는 "요시야의 개혁"으로 많이 알려진 왕입니다.
그의 할아버지 므낫세는 유다의 가장 악한 왕 중 한 명이었지만, 그는 말년에 회개함으로 하나님께 용서함 받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 요시야의 아버지 아몬 왕은 그 아버지의 겸비함을 본 받지 않고, 끝까지 우상과 이방신을 떠나지 않아 자기 신복의 반역으로 목숨을 잃게 됩니다.  하지만 유다 백성들은 왕을 죽인 반역자들을 잡아 처단하고, 다시 다윗의 혈통을 이어받은 아몬의 어린 아들인 요시야를 왕으로 세우게 됩니다. 아마도 유다 백성들은 북이스라엘의 악한 전철을 밟지 않으려 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요시야는 8세 때 유다의 왕으로 기름부음 받습니다.
요시야는 어렸지만 아마도 반역했던 악한 자들을 처단한 경건한 사람들로 하여금 왕으로 세움 받아서 인지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성경은 그의 유년 시절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어렸을 때 곧 위에 있은 지 팔 년에 그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구하고 그 십이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비로소 정결케 하여 그 산당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하여 버리매 (대하 34:3)

요시야는 청년 시절부터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그분을 온전히 따르며 사랑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는 스무살 약관의 나이에 하나님 앞에 모든 이방신과 우상들을 척결할 뜻을 세우고, 유다 뿐 아니라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시므온과 납달리까지 온 이스라엘을 다니며 우상과 그 제단을 파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또한 하나님의 성전을 중수 할 뜻을 가지고, 성전에 들어온 헌금으로 성전 재건 사업을 재개토록 합니다.  이 때 대제사장 힐기야가 성전 헌금함에서 헌금을 꺼내다가 오랜 세월에 헤어진 모세의 전한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합니다.  심상찮은 책이라 생각한 힐기야는 당시 서기관이었던 사반에게 책을 건네게 되고 이 소식은 요시야에게 알려지게 됩니다.
그러자 요시야는 발견된 책이 무엇인지 그 자리에서 사반에게 낭독케 하고 그 율법책의 말씀을 듣던 중 요시야는 곧 자신의 왕복을 찢으며 눈물로 통곡케 됩니다. 지난 날 모든 역사의 잘못이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행하지 않음에 있음을 깨달은 요시야는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 즉시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의 아들 압돈과 서기관 사반과 왕의 시신 아사야에게 명하여 이 율법책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물으라고 명하게 됩니다.

그들은 당시 선지자로 활동하던 여선지자 훌다에게 이 말씀을 묻게 됩니다.
훌다는 가감없이 하나님께서 유다에게 노를 격발한 이유와 임박한 진노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허나 요시야의 겸비함과 눈물과 간구를 들으셨으니 하나님께서 그의 시대에는 재앙을 내리지 않고 평안히 그는 열조에게 돌아가게 할 것을 말씀하게 됩니다.
이에 요시야는 모든 유다와 이스라엘 장로들을 소집하고, 성전에서 발견한 율법책을 읽혀 들려줍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뜻을 분명히 백성들 앞에서 밝힙니다.
"나 요시야 왕은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이루리라!!"
성경은 이 귀한 마음의 요시야 시대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이와 같이 요시야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모든 땅에서 가증한 것을 다 제하여 버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으로 그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였으므로 요시야가 사는 날에 백성이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대하 34:33)
요시야는 이어서 율법책을 근거한 유월절 절기를 지킵니다.
히스기야 시대에도 유월절을 지킨 전례가 있었으나 요시야 때 지킨 유월절이 그때와 다른 것은 바로 말씀에 근거한 유월절이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성결케 하고 유월절 어린양을 잡아 너희 형제를 위하여 예비하되 여호와께서 모세로 전하신 말씀을 좇아 행할찌니라 (대하 35: 6)
이 같이 말씀에 근거하여 지킨 유다 백성들의 유월절을 하나님께선 정말 기뻐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 때에 모인 이스라엘 자손이 유월절을 지키고 연하여 무교절을 칠 일 동안 지켰으니 선지자 사무엘 이후로 이스라엘 가운데서 유월절을 이같이 지키지 못하였고 이스라엘 열왕도 요시야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모인 온 유다와 이스라엘 무리와 예루살렘 거민과 함께 지킨 것처럼은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였더라 (대하 35:17~18)

이처럼 하나님 앞에 겸비한 요시야..
유월절을 거룩히 지키며 하나님 앞에 온전했던 요시야는 안타깝게도 서른 아홉이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합니다.
그가 죽음을 맞이한 전쟁이 있었는데, 이 전쟁이 바로 역사 상으로도 유명한 갈그미스 전쟁입니다.  당시 페르시아 지역의 정세는 이스라엘을 괴롭혀 온 앗수르가 힘을 잃어가고, 새로운 신흥세력인 바벨론이 역사의 주도권을 장악할 때 애굽은 나약해진 앗수르와 연합하여 신흥 바벨론과 대치하려는 중이었습니다. 친 바빌론 성향이었던 요시야는 앗수르를 도우러 가던 애굽 왕 느고를 갈그미스에서 막아서게 됩니다.

하지만 애굽의 이 일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애굽 왕 느고를 통해 그와 싸우지 말라고 경고 하셨음에도 듣지 않고 그와 맞서다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앗수르가 애굽과 손을 잡고 바벨론을 이기게 된다면 앗수르의 마수 아래 또다시 유다가 흔들릴 것이라는 트라우마가 그를 짓눌렀던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 전쟁의 패전으로 후에 애굽은 요시야 아들 여호아하스를 폐위 시키고 유다를 속국으로 삼으며, 엘리야김을 왕으로 세워 조공을 바치게 합니다.
이러한 친 애굽 정책이 후에 유다는 바빌론에게 멸망 당하게 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되죠.

아~~ 이것으로 긴 유다 역사를 다룬 김간사 역대기 이야기를 마무리 할까 합니다.
원래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는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까지 이야기하고 바벨론 포로 귀환도 복선으로 깔아주는 한 편 더 쓸까 했으나 이것은 나중에 역대기 이야기 외전에 시간되면 다루겠습니다.
허나 사실 상 유다의 마지막 왕은 요시야가 끝이랍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에도 유다 왕족을 따라 이어오다 요시야 때에 그 아들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로 나뉘게 됩니다. 놀랍죠??

유다 왕 요시야는 히스기야 때와 달리 말씀에 의지하여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히스기야가 예배의 회복과 기도로 하나님 마음에 합했다면 요시야는 말씀을 듣고 회개한 케이스입니다.

말씀에는 운동력이 있어 살아 역사 합니다. 말씀은 들음으로 마음 속 깊은 곳에 비수와 같이 꽂혀 우리의 자아를 쪼개고 부수고 무너지게 합니다.
예배도 중요하고 말씀도 중요하지만 끝까지 믿음을 지탱케 하는 것은 바로 이 말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번 하나님과 만나는 감격의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또한 매주 감격의 그러한 예배도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예배의 자리를 떠난 곳에서는 믿음을 지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말씀은 세상 어느 곳, 어떤 환경에서든지 우리를 든든히 지켜 줍니다.
한번 듣고 깨우친 하나님의 말씀은 가슴 속 폐부 깊이 박혀 나를 믿음으로 지탱케 하는 힘이 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는 귀하고 복된 인생 되시길 바랍니다.

또한 역대기를 마무리 하면서 한 말씀 더 드리자면 역사는 늘 우리에게 반복 적인실패와 죄를 거듭하지 않도록 거울이 되어 줍니다.
성경의 역사를 통해 더욱 말씀을 가까이하며 믿음이 흔들리지 않은 거룩한 하나님의 제사장과 자녀들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 이념을 초월한 예배의 회복 -

Posted by 김간사
2013. 11. 11. 13:35 역대기 이야기



김간사의 역대기 이야기 6

 - 이념을 초월한 예배의 회복 -
 

오늘 다룰 유다의 왕은 이미 기도로 여러분에게 잘 알려진 히스기야 왕입니다.
그의 기도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신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는 역대기보다 열왕기에 소개가 더 잘 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열왕기보다 역대기의 시각으로 히스기야 왕을 살펴 보겠습니다.

히스기야는 앞서 언급한 아하스 왕의 아들로 25세에 왕위에 오릅니다.
그의 아버지 아하스는 왜 그렇게 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 배경은 모르겠지만 친 앗수르 정책을 펼치고 있었답니다.
당시 열강은 최강 앗수르가 페르시아 지역 패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동으로 북이스라엘과 아람 등의 몇 몇 나라들 그리고 남으로 고대 강국 애굽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추측컨데 김간사 역대기 이야기 5에서 말씀한 드린 것처럼 동족이었던 북이스라엘에게 당한 사건도 있고, 북이스라엘과 안 좋은 관계였던 앗수르에 붙어 있는 것이 대세라 생각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히스기야는 즉위 하자마자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가자는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소를 성결케 하고 다시 예배를 회복하는 일을 시작합니다.   이 일이 즉위 후 갑자기 진행이 되었음에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예비 하셔서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고 모든 유다 백성들은 기쁨으로 이 일에 동참합니다.
유다의 이전 모든 선한 왕 중에 유월절을 지킨 왕이 없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예배의 회복 뿐 아니라 이 유월절 지키기를 선포합니다.
그 뿐 아니라 히스기야는 자기 백성 유다와 함께 동족이었던 북이스라엘에게도 이 유월절은 함께 지키자고 권면합니다.
그의 사고에는 우리가 한 핏줄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역사적 감정과 갈등을 초월한 하나님 안에서 한 민족의식을 가지자는 놀라운 사고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미 우상과 이방신으로 얼룩진 북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이 조롱하고 비웃으며 배척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중 몇 몇 경건한 사람들이 이 권면을 받아 들입니다.
"아셀, 므낫세, 스불론의 몇 사람들이 스스로 겸비하여 예루살렘에 이르렀고.." (대하30:11)
그중에도 경건한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드디어 히스기야의 결단으로 시작된 유월절 예식에 이념을 초월한 민족의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인 모든 무리들의 수가 너무 많았습니다.  그들을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성결케 할 제사장들의 수가 너무 적어 북에서 온 에브라임, 므낫세 잇사갈, 스불론의 지체들이 자신을 성결케 하지 않고 유월절 양을 먹어 규례를 어기게 됩니다. 
이를 본 히스기야가 이들을 위해 하나님께 회복을 놓고 기도합니다.
"선하신 여호와여 사하옵소서 결심하고 하나님 곧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는 아무 사람이든지 비록 성소의 결례대로 스스로 깨끗케 못하였을찌라도 사하옵소서" (대하30:19)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들으시고 그 예배에 함께한 백성들을 고쳐 주십니다.

하나로 통합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예배로 인해 엄청난 예배의 감격과 풍성한 은혜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그들은 이 예배를 너무 기뻐한 나머지 다시 칠 일을 더 지키자고 결의합니다.
이에 히스기야는 이 예배에 자기의 많은 재산을 내어 놓고, 제사장들도 그렇게 자기 소유를 풀어 이 예배에 감격을 더하게 됩니다.
성경은 이때의 기쁨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큰 희락이 있었으니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 때로부터 이러한 희락이 예루살렘에 없었더라.  그 때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어나서 백성을 위하여 축복하였으니 그 소리가 들으신 바 되고 그 기도가 여호와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 상달하였더라" (대하30:26-27)

이후 히스기야는 예배를 좀 더 잘 드리기 위해 자기 재산을 들여 제사장과 예배를 돕는 자들을 따로 세우고,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급여를 주고 주야로 하나님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게 합니다.  또한 백성들의 십일조가 회복되고 그 재물은 여호와 전에 가득 차게 됩니다.  말씀의 회복, 예배의 회복은 교회로 하여금 재정적으로도 풍성해져서 더 많은 것을 나누도록 해 주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예배와 신앙 생활이 회복이 되어도 위기는 언제나 올 수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히스기야는 아버지 아하스와 달리 외교 방향이 친 앗수르 노선에서  친 애굽편으로 반대의 길을 걷습니다.
그러자 앗수르가 그들을 가만히 둘리 없겠죠? 
히스기야 시대에 북이스라엘을 멸망 시켰던 앗수르 왕 산헤립은 그 여세를 몰아서 유다도 침공을 하게 됩니다.
히스기야는 첫 침공 때는 앗수르에게 미안하다고 한번만 봐 달라고 조공을 바치고 내 보내나, 앗수르는 유다를 다시 침공합니다.  앗수르가 첫 침공 때 유다의 금방패 껍데기까지 다 벗겨 갔는데, 또 쳐들어 오는 것을 보면 완전 나쁜놈들이죠?
그놈들이 이제는 완전 유다를 포위하고는 성 내에 있는 유다 백성들의 기를 죽이고 있습니다.

그 때에 성을 방비하던 백성들에게 히스기야는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이 저들보다 더 크시다고 사기를 북돋고 있었지만 눈에 보이는 형편과 전세는 점점 앗수르 편으로 기울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모든 상황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고, 소망은 보이지 않으나 믿음은 지키고 싶은 이 때.. 이 때 주변의 한마디는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의 부하인 랍사게가 이 때 등장해서 포위된 유다를 향해 엄포를 놓습니다.
앗수르 언어도 아닌, 당시 세계 공용어인 아람어도 아닌, 모든 사람들이 다 듣도록 유다 방언으로 외칩니다.
"나의 열조가 진멸한 열국의 그 모든 신 중에 누가 능히 그 백성을 내 손에서 건져내었기에 너희 하나님이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그런즉 이와 같이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꾀임을 받지 말라 저를 믿지도 말라 아무 백성이나 아무 나라의 신도 능히 그 백성을 나의 손과 나의 열조의 손에서 건져내지 못 하였나니 하물며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겠느냐?!!"
 
앗수르 왕 산헤립과 그의 부하 랍사게는 유다 백성과 히스기야를 모욕하는 것 뿐 아니라 해서는 안되는 일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까지 서슴치 않아 그들의 죄를 더하게 됩니다.
이 때 히스기야는 당시 아버지 아하스 시대로부터 한 시대를 풍미한 선지자 이사야와 함께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한 천사를 보내 그 날 밤  앗수르의 군사 18만 5천명을 몰살시켜 버립니다.
이전에 언급한 유다의 큰 군사가 3~5만 정도 였다면 20만 가까운 군사의 규모는 실로 어마어마 하지 않습니까?
세계사의 역사에도 앗수르가 이 유다와의 전쟁에서 패한 내용을 실제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이 사건의 원인을 페스트라고 추측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셨음을..

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앗수르는 쇄퇴의 길로 접어들게 되고, 앗수르 왕 산헤립은 이 패배로 자신의 나라 수도 니느웨로 돌아갔다가 자신의 아들의 배반으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선지자 요나가 가기 싫어하였지만 하나님의 경고를 외쳤던 니느웨.. 그곳을 수도로 가졌던 회개의 나라 앗수르는 회개 후 200년의 영화를 뒤로하고 이 사건을 계기로 페르시아의 패권을 바벨론으로 넘겨주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됩니다.

히스기야는 후에 기도로 병을 낫고, 하나님의 기적을 보며, 생명을 연장하는 은혜를 누립니다.
그러나 후에 바벨론에 침략의 빌미를 제공하게 되고 하나님께 득죄합니다.  이 부분은 역대기보다 열왕기에 더 잘 나타나있습니다.

모든 무너진 삶의 회복은 예배로부터 시작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또한 누군가를 예배로 초청하는 것은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하나님께 기쁨이 됩니다.
또한 하나님은 시대를 초월한 역사의 주관자 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그 이름을 높여 드리고, 또한 오늘도 그 이름을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구약의 선한 사마리아인 -

Posted by 김간사
2013. 11. 11. 13:32 역대기 이야기


김간사의 역대기 이야기 5
 - 구약의 선한 사마리아인 -

 

아하스 왕은 솔로몬 이후 유다 민족의 12번째 왕으로 등극합니다.
그는 아버지 요담이 하나님 보시기에 정도를 행한 것을 본 받지 않고 즉위하자 이방신을 섬기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하스 왕에게 진노 하시고, 그의 아버지 때 강성했던 유다를 다시 이방 사람들 손에 넘기게 됩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진노의 도구로 사용 하시는 나라 중 하나가 바로 동족이었던 북이스라엘입니다.
당시 이 북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기름 붓지 아니한 사람들이 왕을 배반하고 살해하여 반역으로 왕이 되는 것은 물론, 백성들은 이방신들 섬기기를 그치지 않는 콩가루 집안 같은 일그러진 나라의 형국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쓰임 받기에 아무런 자격 없는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 유다를 치는 도구로 쓰임 받습니다.


북이스라엘과의 이 전쟁으로 유다는 용사 12만명이 죽게 되고, 왕자와 많은 궁내대신, 총리들이 죽게 됩니다.
또한 많은 재물들을 빼앗기며 20만명이라는 전쟁 포로가 사마리아로 끌려가게 됩니다.


이 모습을 본 하나님의 사람 오뎃이라는 선지자가 일어나 마음이 교만해진 북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해 경고합니다.
"하나님께서 유다를 진노하신 고로 그들을 치는 모습을 보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를 돌아보기보다 살육하고 노략하며 예루살렘 사람들을 포로로 사로잡아 가고 있구나!!  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범죄함이 없느냐?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박했음을 잊지 말아라!!"


이 경고의 메시지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 중 두목 급 되는 네 사람인 아사랴, 베레가, 여히스기야, 아마사가 마음을 돌이켜 일어섭니다.
그들은 포로들을 끌고 가는 무리를 가로 막고 그 포로들에게 선을 베풀게 됩니다.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사람들을 입히고, 신을 신기고, 상처에 기름을 발라주며 치료해 줍니다.  그리고 그들을 다시 자기네 나귀에 태워 여리고 성으로 내려가 각기 고향 집으로 돌아 가도록 풀어 준 후에 사마리아로 돌아옵니다.


아마도 이 같은 마음으로 유다에 선을 베푼 사마리아(북이스라엘) 사람들을 하나님은 기뻐하셨던 모양입니다.
후에 예수님께서도 패역한 바리세인들의 이웃에 대한 질문에 이 같은 자기네 선조들에게 선을 베푼 사마리아인 모양을 기억하시면서 이야기 하셨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들의 동포였던 선조들은 진정한 강도 만난자의 이웃이 되어 주었으며, 아픔을 당한 사람들의 위로자가 되어 주었습니다.
아무리 우리의 적일 지라도 아픔을 당한 사람들을 향해서는 긍휼함과 안타까움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도 아픔을 당한 사람들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품을 수 있는 마음과
예수님께서도 기뻐하셨던 긍휼을 베푼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삶을 사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