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기 이야기: 6개의 글

- 믿음의 결단으로 인한 손해 -

Posted by 김간사
2013. 11. 11. 13:25 역대기 이야기


김간사의 역대기 이야기 4
 - 믿음의 결단으로 인한 손해 -

 

유다의 왕 아마샤는 솔로몬 이후 9번째에 왕위에 오른 유다의 왕입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신복들을 처단하였으나 그 자녀들을 살려 준 인물로 구약의 말씀에 아버지 죄를 물어 아들을 죽이지 말라는 말씀대로 행한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셔서 국력을 강화시키고 유다에서 병력 30만명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국방력을 위해 북이스라엘에서 10만명을 용병으로 사들여 옵니다.
이 용병을 사 올 때 지불한 돈이 은 1백 달란트라 성경은 기술하고 있습니다.

한 달란트는 지금의 도량형으로 환산하면 34kg에 해당하는 무게 입니다.
신약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청지기 비유에 나오는 금 한 달란트도 이렇게 따져보면 대단한 금액인 것이겠죠?  현재 금 한 돈에 20만원만 쳐도 18억 8천 5백만원 정도랍니다.
이런 식으로 은 1백 달란트를 계산 해 보면 29억 6천만원이 나옵니다.
아마샤가 용병을 사는데 그 정도 엄청난 금액을 지불했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어떤 한 선지자가 아마샤 앞에 나타나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왕이여 왕은 이스라엘 군대와 함께 가지 마시옵소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곧 에브라임 자손과 함께하시지 않습니다."
아마샤는 이 이야기를 듣고 고민에 빠집니다.
그는 용병을 사는 값으로 30억 정도를 이미 북이스라엘에게 지불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하나님의 사람에게 묻습니다.
"내가 이미 이스라엘에서 큰 용사 사는데 30억이라는 큰 돈을 주었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러자 그 선지자는
"하나님께서는 이보다 더 큰 것을 왕에게 주실 수 있습니다."

아마샤는 하나님의 사람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 결단의 결과로 30억을 포기하고 이스라엘 군대를 다시 돌려 보냅니다. 
북이스라엘 군사들도 어렵게 그 자리에 왔는데 헛수고 했다고 생각했는지 노를 발하고 돌아갑니다.
돌아가면서 아마샤의 유다 백성들을 약탈하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샤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과 선지자의 말을 믿고 담력을 내어 염곡이라는 곳에 내려갑니다.  거기서 그는 세일자손 일만과 또 다음 일만을 죽이고 많은 전리품을 얻게 되는 은혜를 누립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믿음의 결단이 주는 축복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30억이라는 돈을 들여서 계획한 나의 사업이 하나님의 말씀과 위배되는 일,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이라면 그 돈을 내려 놓을 수 있겠습니까?  30억이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면 300만원이라도 과연 그렇게 손해 볼 수 있겠습니까?
계약을 파기하면 그 뒤에 이어지는 불명예와 거래처가 끊기는 일들, 심지어 이미 가지고 있던 재물까지 손해 보는 일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그렇게 믿음의 결단으로 인해 얻어지는 결과가 비록 세상적인 물질의 축복이 아니라 하더라도 받아 들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결단을 내리는 그 행동에 주목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십니다.
비록 그것이 세상적으로 볼 때 죽는 일이라 할 지라도 죽음도 초월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아마샤는 불행히도 이 일 이후에 세일자손의 우상들을 전리품으로 가져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섬기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또한 이 일로 인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의 말을 이번에는 듣지 않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 결과 아마샤는 북이스라엘을 충동하여 일으킨 전쟁에 패하게 되고, 그는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가 그를 모반한 자기 백성의 무리의 손에 죽고 마는 비운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은 하나님 안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시고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만 계시면 전부를 가진 것입니다.
항상 자족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 온전한 길을 걷게 돕는 영적멘토 -

Posted by 김간사
2013. 11. 11. 13:21 역대기 이야기


김간사의 역대기 이야기 3
 - 온전한 길을 걷게 돕는 영적멘토 -

 

요아스 왕은 유다 역사상 유래가 없었던 악녀이자 여왕인 아달랴를 할머니로 둔 사람이었습니다.
이 아달랴는 왕이었던 자신의 아들 아하시야가 죽자 아들을 대신해 왕위에 오르려고 모든 손자들 다 죽이고 유다 왕권을 차지한 여자입니다.  어떻게 이처럼 천륜을 저버린 패역 무도한 여자가 있을 수 있을까? 생각해 하실 수도 있는데, 그녀가 북이스라엘의 왕 아합을 아버지로, 그 유명한 이세벨을 어머니로 둔 사람이란 것을 생각하신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아달랴는 유다에 정략적으로 시집오면서 남편 여호람, 아들 아하시야 왕으로 하여금 온갖 악한 행위를 하도록 만들었던 배후 인물입니다.
또한 그녀의 할아버지로 오므리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인물에 대해서는 주제를 벗어나기에 다음 "김간사 열왕기편"에서 기회가 되면 자세히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달랴가 모든 왕의 씨를 멸할 때 요아스의 고모인 여호세바는 갓난 아기였던 요아스를 유모와 함께 침상에 숨기고 목숨을 구해 내게 됩니다.  이렇게 살아남은 요아스는 당시 대제사장이었던 여호야다 손에 숨겨 자라나게 되고, 6년 동안 그의 집에서 길리게 됩니다.
묘한 인연은 대제사장인 여호야다의 아내가 바로 이 요아스 왕을 살려 낸 고모 여호세바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요아스는 어린시절 고모와 대제사장 고모부로부터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으로 훈육 받으며 자라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게 요아스는 일곱 살이 되고, 6년을 기다려온 여호야다는 조카 요아스를 앞세워 거사를 일으키게 됩니다.  이미 유다의 많은 유력한 인물들은 아달랴에게서 마음을 돌이킨 상태이기에, 모두가 여호야다의 거사에 동참하게 됩니다.
혁명의 그날.. 아달랴는 성소 밖으로 쫓겨나 칼에 죽임을 당하고 어린 요아스 왕은 제사장 아들들에게 기름 부음 받음으로 드디어 왕위에 오릅니다.

여호야다는 왕이 된 조카 요아스와 유다 백성 사이에 하나님 앞에 언약을 세우고,일심으로 바알 당을 헐고, 바알 제사장을 없애며, 경건한 레위인을 세워 하나님 전의 직무를 맡기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회복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온 나라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기쁨과 평안을 누렸습니다.

이쯤 되면 대제사장이었던 여호야다는 요아스 왕을 등에 엎고 세력을 펼칠만도 한데..
왕을 배경으로 땅 투기를 할 수도, 여러가지 이권이 있는 사업도, 그 밖에 정치와 경제를 손에 쥐락 펴락 할 수 있을텐데..
여호야다는 신실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요아스 왕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도록 정직한 모사의 역할을 잘 감당합니다.
성경은 이 여호야다를 이렇게 평가 합니다.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모든 날에 여호와의 전에 항상 번제를 드렸더라. 여호야다가 나이 많고 늙어서 죽으니 죽을 때에 일백삼십 세라.
무리가 다윗 성 열왕의 묘실 중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저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그 전에 대하여 선을 행하였음이더라" (대하24:14~16)

여호야다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제사장 역할과 자신의 조카 왕을 위해 충성스럽게 그의 직분을 감당했던 모양입니다.
언감생심.. 왕의 권력을 노려 봄직도.. 그 권력을 이용해 부를 축척할 욕심도 있었을 것인데..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조력자로 이렇게 충성을 다하도록 하였을까요..?
잠잠히 고인의 그 충정과 절개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요아스 왕은 여호야다가 죽고 난 후 다른 방백들의 말을 듣습니다.
그의 믿음의 뿌리에는 자신만의 하나님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함께 한 방백들의 꾀임에 넘어가 다시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기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이 일로 인해 하나님은 다시금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통해 유다 백성들에게 외치게 하십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 명령을 거스려 스스로 형통치 못하게 하느냐?!! 너희가 하나님을 버리니 하나님께서 너를 버리시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나 유다의 이 망할 백성들은 스가랴의 말을 무시하고, 그를 돌로 쳐 죽이는 범죄를 저지릅니다.
이 일로 인해 유다는 아람 군대로 말미암아 큰 전쟁을 겪게 되고, 요아스의 길을 굽게 한 방백들은 모조리 멸절 당하며, 유다의 많은 보물들은 아람으로 빼앗기게 됩니다.
요아스는 이 패전으로 인해 스가랴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모반으로 암살을 당하게 되고 열조의 묘실에도 못 오르는 굴욕을 당하게 됩니다.

요아스 왕의 사건으로 우리가 돌아보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주변에 우리를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세워 줄 수 있는 영적 멘토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그러나 진실로 나 자신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다면, 나만의 하나님 나의 주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불행한 일입니다.
나를 만나 주시고, 나의 삶을 주관하시고, 지금 내가 예배하고 있는 바로 그 하나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그 놀라운 길을 열어주신 예수님을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그 길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 평화주의자의 실수 -

Posted by 김간사
2013. 11. 11. 13:18 역대기 이야기


김간사의 역대기 이야기 2
- 평화주의자의 실수 -

 

여호사밧은 아사 왕의 뒤를 이어 태평한 유다를 이끌었던 솔로몬 다음의 네 번째 왕입니다.
그는 아버지 아사 왕의 젊은 시절과 같이 하나님을 온전히 따랐고, 모든 국고성을 견고히 세움은 물론 모든 일들을 다윗 시대와 같이 하나님께 묻고 행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어 그 나라를 그 손에서 견고하게 하셨고 주변 모든 나라들로부터 여호사밧을 두려워하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그의 시대를 부귀와 영광이 극에 달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평화주의자여서 동족인 북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고 그들과 정략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당시 북이스라엘의 집권자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하나님께 패역의 절정에 달했던 아합 왕이었습니다.
아합은 자신의 딸을 여호사밧에게 보내어 여호사밧의 아들과 결혼하게 하는데 이 자부로 거둬들인 사람이 바로 악녀 아달랴입니다.

여호사밧은 아마도 조상 다윗과 같이 이방신을 섬기는 나라를 멸하기보다 솔로몬과 같이 외교로 협정 맺는 방법을 선호했던 모양입니다.
그는 왜 하나님께서 그 조상들을 종 되었던 애굽 땅에서 건져내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라고 하신 정확한 목적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피 흘리기 보다 인간적인 방법인 평화적 외교로 인본주의를따랐던 게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시대에도 타협할 것이 있고, 정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죄는 결코 우리가 타협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결단하고 끊어야 할 대상입니다.
그의 이 같은 안일한 인본주의적 결정이 후대에 엄청난 민족의 피 흘림과 영적 기강이 흔들리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습니까?

그러던 어느 날 아합은 여호사밧에게 길르앗라못을 함께 치자는 제의를 합니다.
길르앗 라못은 요단동쪽의 수리아 땅으로 이스라엘의 지정학 적으로 중요한 요지입니다.
후에 이 땅이 앗수르, 지금의 내전으로 신음하고 있는 시리아 땅이 되고,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는 다메섹(다마스쿠스)이 나라의 수도로 있는 땅이 됩니다.

경건한 여호사밧은 이 전쟁을 하나님께 물어보자고 건의하는데, 이에 아합도 동의 합니다.
희안한 것은 북이스라엘에 400명의 선지자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아합의 시대에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싸웠던 주옥같은 엘리야라는 걸출한 선지자 한 명만 있는 줄 알았는데 놀랍죠?
하지만 이 선지자들은 모두 하나님께 버림 받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소위 하나님의 선지라라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합 왕에게 길한 예언만 합니다.
"올라 가소서.  하나님이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하지만 여호사밧은 남은 선지자가 더 있는지 다시 묻고 아합은 매번 자기에게 흉한 예언만 하는 선지자가 하나가 있으나 안 듣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그를 불려 올립니다.

이 때 그들 앞에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라는 선지자가 서게 됩니다.
그는 왕들 앞에서도 당당하며 두려움이 없는 온전한 진짜 선지자 였던 것 같습니다.
그는 아합에게 한번 싸워 보시라고 하며, 이길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아합이 그의 거만한 태도와 비꼬는 말에 짜증을 내자 미가야는 비로소 하나님이 자신에게 보여주신 천상에서 벌어진 일들과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이미 아합 편에서 여호와의 선지자로 인정함 받고, 항상 길한 예언으로 아합의 신임을 받던 기득권층인 거짓 선지자 시드기야가 분노하며 미가야의 뺨을 치며 모욕합니다.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말미암아 가서 네게 말씀하더냐??"
웃기죠?? 결국 미가야는 옥에 갇히고 맙니다.

이에 거짓 선지자의 말을 듣고 올라간 길르앗라못 전쟁에서 아합은 꾀와 속임수를 쓰지만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아합의 죽음 가운데서도 여호사밧은 무사히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나 선견자 예후가 그의 앞에 나타나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가하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서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하나님은 여호사밧의 유다를 징책 할 도구로 모압과 암몬과 여러 연합군을 택하십니다.
아무리 견고했던 여호사밧의 유다라 할지라도 이렇게 많은 연합군이 치러 올라오니 감당할 수 있었겠습니까?
두려움 가운데 여호사밧은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을 공포하게 됩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전에 유다의 모든 사람들 곧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긍휼을 구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여호사밧의 기도는 온전히 하나님의 주권과 권능을 인정하는 기도, 여호와의 언약을 의지하는 기도, 긍휼을 구하는 기도가 절절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도는 이렇게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자 우리 마음 약하신 하나님께서 그 여호사밧의 겸비함을 보시고, 간구를 들으시어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말씀을 대언케 하십니다.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여호사밧은 이 큰 전쟁에서 적들이 자기네들끼리 싸우는 하나님 역사하심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서로 죽이고 죽는 전쟁터에서 남은 전리품을 가져오는데 사흘이나 걸렸다 합니다.

이렇게 겸비했던 여호사밧.. 끝까지 악인과의 교제를 끊었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악인과의 교제를 싫어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서도 여호사밧은 아합의 아들로 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왕이 된 아하시야와도 계속 교제를 이어갑니다.

여호사밧은 역대기에 선한 왕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결정과 치리함이 인본주의, 평화주의적 결정이 아닌 온전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결정을 하였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늘 하나님께 모든 것을 물어보고 응답을 받지만 정작 결단을 내릴 때 인간관계와 정으로 인해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는 악습이 있다면 말씀 안에서 끊을 수 있길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은 항상 겸비하고 회개하는 상한 심령을 기뻐하십니다.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잃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의뢰하시는저와 여러분 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