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음하지 말라 -

Posted by 김간사
2015. 5. 23. 13:21 Bible Insights


김집사의 Bible Insights
- 간음하지 말라 -

14 간음하지 말라
(출애굽기 20:14)


매 주 송목사님 십계명 강해 설교가 계속 되고 있는 요즘..
이 설교를 굉장히 불편해 하는 성도들이 많이 있음을 모임을 통해 듣습니다.
또한 송목사님조차 십계명을 죽이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 목숨 걸고 지켜라는 의미로 주셨다는 말에 더욱 십계명과 지켜야 하는 설교는 부담으로 다가 올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때 저는 사랑이신 하나님이 왜 십계명을, 어떤 목적으로 그 백성들에게 계명으로 주셨을까 한 번 묵상 해 보았습니다.
항목 하나 하나 문자 그대로 지키는 것에 촛점을 맞추고 "네가 이것 지키나 안 지키나 보자~" 하고 시험하는 유치한 하나님은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계명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은 이러하지 않았을까요?
"네가 나만을 사랑 해 다오.. 
그리고 나 사랑하는 만큼 네 이웃에게 똑같이 베풀어 주면 좋겠구나~
적어도 네 부모를 공경하고, 이웃의 목숨을 빼앗지 말고, 그들의 것을 도둑질하지 말고, 거짓말하지 말고, 네 이웃이 가진 것을 탐내지 않았으면 좋겠단다.  
이것이 네 이웃을 사랑한다는 표현이 아니겠니..??"
이 정도 실천하는 것은 이웃을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이 기본으로 하는 것이니 꼭 지켜주면 좋겠구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아닐까요?

문자 그대로 지키는 것에만 의미를 두고 지키는 것에 목적을 삼는 것은 그것을 말씀하신 분과 그 말씀을 주신 분의 의도를 잊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 분의 본래의 의도와 인격적 관계를 상실 할 때 그 명령은 율법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 율법사들을 향해 그렇게 욕한 이유도 바로 율법을 지키는 것에만 관심이 있지 정작 그 율법이 의미하는 정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명문화된 율법, 규칙, 법률은 언제나 사회의 제일 아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위의 상위 개념으로  이 사회를 유지하고 질서를 이루는 말 안해도 존재하는 보편적인 "도덕"이 있습니다.
그 도덕 위에 바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이 사회에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만약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만 가지고 있다면 율법(법률)과 도덕은 없어진다 할지라도 이 사회는 훌륭히 아름답게 돌아갈 것입니다.

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실제로 그랬다는 것은 아니고 이런 경우가 있지 않을까 해서 한번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구약 시대에 팔레스타인 근동에는 일부 다처제가 허용되고 있었기에 한 남자에게 다섯 아내가 있었다고 칩시다.
그 남자는 그의 아네들 중 유독 넷째 아내만 미워하고, 그렇게 물리적 폭력을 가하며 인간 이하의 비 인격적 대우를 하고 있었답니다.
여자는 늘 눈물과 아픔으로 세월을 보내며, 남은 자신의 생애를 생각해 볼 때 어둡고 암울하기만한 자신을 저주스러워하고, 하루 하루를 고통 가운데 지낸답니다.
그런데 그 여자를 너무나 가엽게 여기고 연민과 사랑을 가지고 멀리서 지켜보던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무신경하게 지켜 보고 말 없이 남몰래 동정의 손길을 내밀어 주던 남자.. 그리고 그에게 점점 끌리게 되는 여자..
여자는 그 남자에게 사랑을 느끼며 살 희망을 가지게 되고, 결국 그 여자는 그 남자와 함께 멀리 도망 쳐 버립니다.
헌데 일이 생겼습니다. 
그 전 남편이 그 모든 불륜의 사실을 알게 되었고, 도망가던 그 두 사람은 결국 남편의 종들에게 붙잡혀 오게 되었습니다.
율법에 따라 그 두 사람은 결국 모든 사람들 앞에서 돌에 맞아 죽게 되는 운명을 맞이 합니다.ㅠ

지어 낸 이야기이지만 너무 안타깝지 않습니까?
이 이야기를 듣는 우리 모두에겐 좀 아니긴 해도 '아~ 그냥 두 사람 멀리 도망가서 잘 살았음 좋겠다~~ㅠ'는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까?
하지만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그들은 잡히고 율법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두 사람이 그런 선택을 하게 된 배경, 생명의 존엄성, 그리고 두 사람에 대한 보는 이의 연민은 율법 앞에서 아무 소용 없게 됩니다.
제가 무슨 불륜을 미화하려는 의도로 쓴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비슷한 상황이 바로 신약 시대에 실제 벌어집니다. 
(요한복음 8:3~11)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예수님 앞에 끌고 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들먹이며 율법에는 이 여인을 돌로 쳐 죽이라고 했는데 예수님 당신은 어떻게 하겠냐고 물어봅니다.
예수님은 땅에 무엇인가를 쓰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어른들로부터 청년들까지 그냥 떠나가 버립니다.  
이윽고 그 자리에는 예수님과 그 여인.. 두 사람만 남습니다.

예수님이 그 여인에게 이야기 하십니다.
"너를 정죄하던 자들이 어디있느냐? 너를 정죄하는 자가 없느냐?"
여인은..
"어...없..습니다...ㅠㅠㅜ"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아라."

아~~~ 예수님~~ㅠㅜ 
어떻게 이런 말씀을 하실 수가 있습니까?
여러분!! 용서함을 받아 본 적 있으십니까?ㅠㅜ

인생 절망의 순간, 내 생각에 '이젠 정말 끝났어!!"라고 하는 말 할 그때, 그 절망의 순간을 벗어 날 수 있는 용서함을 받아 본 경험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용서함 받아 본 그 사람만이 그 여인의 심정을 이해 할 것입니다.
그 여인는 앞으로 절대(Never, ever) 죄를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아시겠습니까?
불륜을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 쯤은 다 아시겠죠?
용서함 받은 자가 또 똑같은 죄를 다시 범한다는 것은 그 용서를 해 주신 분에 대한 모독이라는 것 쯤은 다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렇게 여인에게 말씀하신 예수님은 율법보다 먼저 생명에 촛점을 맞추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본래의 뜻을 먼저 기억하게 하신 것입니다.
용서는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율법의 완성을 이루셨습니다.

표면화, 명문화 된 율법을 지키겠다고 그 항목에 집중하여 생명을 죽이는 인생이 아니라 그 계명을 주신 분이 사랑이라는 의도로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이 십계명은 우리에게 부담이 아니라 바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십계명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모든 이웃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중요한 행동 지침이 될 것입니다.

십계명이 부담으로 다가 왔다면 이제는 그 십계명을 지키는 것 위에 사랑을 기억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이 하신 사랑이 넘치는 아름다운 조국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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