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Insights: 74개의 글

- 거짓의 사람들 -

Posted by 김간사
2014. 7. 26. 13:24 Bible Insights


김간사의 Bible Insights
- 거짓의 사람들 -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장 15~17)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세기 3장 4~5)


제가 살아오면서 요즘 처럼 사회적 계층간의 갈등과 정부에 대한 불신과 미움이 많았던 시기가 있었는가 싶습니다.
왜 서로를 속이고 신뢰를 주지 못하는 이런 상태가 된 것일까요?
사람들은 왜 거짓말을 하고 이웃을 속이고 해를 끼치려 할까요?

"거짓의 사람들"이라는 책의 저자 스캇 펙은 이러한 인간의 악을 병리학적인 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영성가요 정신과 의사이며 심리학자인 그는 악을 인간이 치료해야하는 병이라는 관점으로 보고, 실제 상담과 임상과정에서 겪었던 악을 다양한 정신과 분석을 통해 그것를 조종하는 배후의 영적세력을 밝혀 냄과 동시에 또한 치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악과 거짓이라는 병에 걸린 인류를 사랑이라는 방법으로 치유하는 것이 그의 시각인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 악과 거짓을 조명하고 싶습니다.
태초에 악과 거짓은 우리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거짓은 바로 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가 사단에게 속은 것, 그것이 바로 거짓의 발단이 된 것이며 인류와 하나님 사이를 가른 것입니다.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것을 말씀하십니다.
그 나무의 열매를 먹는 날이면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사람에게 이야기 하기를 죽지 않고 하나님과 같아질 것이라고 속이고 있습니다.

거짓말의 첫 발단은 바로 사단에게 있습니다.
속이는 것의 첫 시작도 태초에 사단에게 있습니다.
거짓말과 속이는 속성은 우리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사단의 속성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서로 속이고 거짓말을 합니다.
거짓을 뻥이라는 하찮은 개념으로 전락시켜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거짓말은 하나님의 속성이 아닌 사단의 속성이라는 것입니다.
인류는 태초의 인간 아담의 범죄로 인해 사단에게 넘어가게 되었고 또 그에게 귀속되 버렸습니다.  
그 누구도 부인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의 결정적 증거는 인간은 모두 죽는다는 것입니다.
인류가 사단에게 속했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고 서로 속이고 악을 행하게 되며 결국에는 사망으로 빠지게 되며 사망의 종노릇하게 된 것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요8:44)

자신의 삶을 돌아보길 원합니다.
아직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닮길 원한다고 하면서 우리는 사단의 속성을 행하고 있지 않는가요??
거짓말하는 자신을 보면서 우리는 연약하니깐 어쩔 수 없어라 치부하면서 자신을 죄 가운데 체념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맞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성 때문에 그렇게 넘어 질 수 있겠죠..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그러한 죄인임을 자각하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싸우고 있느냐 이것입니다.

거짓말을 하는 첫째 원인은 나의 유익과 이권을 위함입니다.
거짓으로 포장할 때 내가 그 거짓말하는 대상으로 하여금 그에게서 무엇인가를 빼앗기를 위한 의도가 숨어있음을 부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대상을 내 마음대로 조종하기 위해선 내 말에 따르도록 해야 하는 위엄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때로는 거짓말로, 폭력으로 공포로 그들에게 어필합니다.
상대를 내 마음대로 하기 위한 것의 결국은 바로 살인이고 죽음입니다.
죽이고 난 시체는 그 의지가 없습니다.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습니다.  시체의 위치, 표정, 행위 모두 폭력자 맘대로 할 수 있습니다.

사단은 악과 거짓을 거처 결국에는 죽음에 치닫게 합니다.
그러나 사랑이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고, 우리의 의지를 존중해 주십니다.
그 사랑의 표현이 바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아닐까요?
교만하여 먹을 의지도 내게 있고, 피조물임을 자각한 내가 절제할 수 있는 것도 내 의지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의지를 존중해 주시고, 비록 나쁜 결정을 했다 하더라도 선으로 우리에게 갚아 주십니다.
아~ 이 사랑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 최고의 표현이 바로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이 아니겠습니까?

세상은 거짓으로 가득차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세상 가운데 우리는 진실함과 사랑으로 맞서길 원합니다.
내가 갖고자 하는 유익을 위해 진실과 대면할 때 거짓으로 피하여 그것을 취하는 사단의 속성을 선택하기 보다는 비록 내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절망이라는 상황 가운데 놓일 지라도 진실을 선택하는 용기와 결단이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원합니다.

그러한 진실을 선택함으로써 내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님의 제자임을 나타내는 거듭난 사람임을 세상에 커밍아웃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그리고 거짓과 악으로 인해 사망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는 인류를 예수님이라는 사랑의 치유약으로 치유하는 올 여름선교 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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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드로를 꾸짖으심 -

Posted by 김간사
2014. 7. 7. 12:42 Bible Insights

김간사의 Bible Insights
- 베드로를 꾸짖으심 -

15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20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태복음 16장 15절~25절



광야에서 40일 금식하시고 주리신 예수님.. (마4:2)
사랑하는 나사로의 죽음을 보시고 눈물 흘리시는 예수님.. (요11:35)
여행의 행로에 곤하여 사마리아 한 우물가에 지쳐 주저 앉으신 예수님.. (요4:6)

저는 이런 예수님의 인간적이신 모습이 참 좋습니다.
예수님이 인간이셨기에 이런 인간의 나약한 모습도 가지셨다는 것이 제게 참 위로가 됩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시고, 너무도 기뻐서 자신이 짊어져야 할 사명의 무게를 제자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어쩌면 혼자 짊어져야할 그 사명의 무게를 이제는 제자들에게 이야기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지 않으셨을까요?
그런데 많은 고난을 받으시고 죽임 당하신 후에 사흘만에 살아나야 한다는 비밀을 이야기 하자 베드로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예수님을 다그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베드로를 이번에는 크게 꾸짖으십니다.

예수님에 대해 정확히 표현한 베드로를 칭찬하신 예수님이, 곧 바로 베드로를 크게 꾸짖으셨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보통 예수님의 의도를 정확히 모르고, 인간적인 생각만 하는 베드로를 지적하는 해석들을 많이 하십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인간 예수님의 마음으로 이 부분을 주목해 보고 싶습니다.

예수님도 언젠가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죽음을 당해야 하는 고난을 알고 계셨습니다.  어쩌면 그 사건을 매번 묵상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피할 수도 없는 운명임을 기억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로 인해 늘 갈등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자신이 감당해야 되는 사명 그리고 그 무게.. 그리고 십자가..
그 갈등의 최고조가 십자가 지시기 전날 밤 하나님께 잔을 옮겨 달라 기도하시는 내용이 아닐까요?

그런데 베드로가 그 갈등하시는 예수님의 인간적인 연약함을 붙들고 항변하니 순간 예수님도 흔들리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자신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들추어내자 벼락같이 화를 내신 예수님.. 뿐만 아니라 사단이라고 저주까지 퍼 부으시는 예수님..
저는 이 부분도 인간이셨던 예수님의 한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누군가가 저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지적하거나 들추어 내면 저도 벼락같이 화를 냅니다.  그리고 그것을 부정하거나 숨기려 합니다. 

하나님이시며 창조주이셨던 예수님이 가지셨던 인간다운 연약한 모습..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신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연약한 부분을 부정하거나 숨기지 않고 정면으로 대면하십니다.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사랑과 믿음을 보이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동일한 믿음을 요구하시는 듯 합니다.
갈등의 십자가.. 그러나 사명을 감당한 예수님..
우리도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길 원합니다.

내일부터 제주로부터 시작되는 여름선교의 사명..
갈등하고 계십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짊어지고 나아가야 할 예수님의 작은 십자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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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하되 드러내지 않는다 -

Posted by 김간사
2014. 7. 1. 00:00 Bible Insights

김간사의 Bible Insights
- 존재하되 드러내지 않는다 -

2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경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36 예수께서 저희에게 경계하사 아무에게라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계하실수록 저희가 더욱 널리 전파하니
37 사람들이 심히 놀라 가로되 그가 다 잘하였도다 귀머거리도 듣게 하고 벙어리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마가복음 7장 24,36~37


스웨덴에는 그들이 자랑스러워 하는 한 부자 가문이 있습니다.
스웨덴 주식시장 시가 총액의 40%,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점유하고, 스웨덴의 14개 대기업을 소유한 단 하나의 가문..
150년 넘게 5대에 걸쳐 경영권을 이어온 발렌베리 일가가 바로 그들입니다.

이들은 기업의 생존 토대는 사회라는 모토 아래 영업이익의 85%를 법인세로 사회에 환원하며, 대학 도서관 박물관 건립등의 공공사업의 투자를 아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경영 후계자 중 어느 누구도 세계 1000대 부호 명단에 이름을 올린 적이 없습니다.
자신의 특권 대신 책임을 선택하여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그들은 스웨덴의 자긍심이 됩니다.

그들의 슬로건 중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문구가 있습니다.
Esse, Non Videri
(존재하되, 드러내지 않는다)
나라의 경제를 뒤흔들 수 있는 힘이 있지만 스스로 자신을 숨기며, 모두가 행복한 복지사회를 이루는데 힘이 된 발렌베리 가문..  그런 가문을 가진 스웨덴이 참 부럽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기를 꺼려 하셨습니다.
2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경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막7:24)

예수님은 두로 지경에서 귀신 들린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고쳐 주십니다.
그리고 시돈, 데가볼리를 지나 갈릴리 호수에 이르러 귀 먹고 어눌한 자를 고쳐 주십니다.
하지만 그 놀라운 두 이적을 보이신 예수님이 공통적으로 보이신 반응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시며 자신을 숨기시는 것입니다.
더 많은 사역과 복음 전파를 위해서라면 제자들에게나 고침 받은 사람들에게 널리 나를 알리라고 말해야 옳은 반응이 아닐까요??
예수님의 때가 이르지 않았기에 자신을 숨기셨던 이유도 있지만 다른 목적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우리에게 남겨 주신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요,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 되십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이러한 반응처럼 그의 몸 된 교회는 자신을 드러내기 보다는 숨겨지고 목소리를 내기 보다는 감춰지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교회가 핍박을 받을 때가 있었습니다. 
믿음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하는 경우가 있었기에 교회는 자연스럽게 자신을 숨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가 세상적인 부와 권력이라는 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교회의 잘못이 바로 예수님의 잘못으로 세상에 비치게 되었고, 교회의 타락이 예수님의 타락으로 그 이름에 먹칠을하게 된 것입니다.
교회가 예수님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에는 예수님이라는 대표성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일거수 일투족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아니 아예 드러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지상 명령이신 복음 전파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요? 
본문에서는 예수님께 치유함을 받은 사람들은 그 즉시 자신의 기쁨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말하지 말라고 해도 자신이 받은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말려도 자신이 받은 은혜는 숨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교회도 이러한 방식의 복음 전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교회는 드러나지 않더라도 교회 안의 생명의 기쁨, 치유, 은사는 그 은혜를 입은 자들로 하여금 전파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이름은 감추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성도들로 하여금 전파되는 것..
예수님은 이런 것을 원하지 않으셨을까요?

발렌베리 일가의 정신이 스웨덴의 긍지가 되었던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존재는 하되 드러나지 않게 이 사회를 움직이는 커다른 능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통치가 보이지 않게 이 땅과 이 민족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kimkans.tistor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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