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일시 -

Posted by 김간사
2014. 3. 9. 14:14 Bible Insights

김간사의 Bible Insights
- 동일시 -

16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찌니 
17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하신 대로 하라 
18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케 할까 함이니라  

신명기 20:16~18


가나안 땅 입성을 앞둔 출애굽 2세대에게 다시금 하나님은 그곳의 모든 것들을 멸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긍휼히 여기지도 말고, 불쌍히 여기지도 말고 호흡이 있는 모든 것을 죽이라 하십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 잔혹한 하나님의 면이지 않을까 생각되면서 왜 하나님은 이렇게 잔인한 명령을 하셨을까요?
그냥 홍해를 가르는 그 놀라운 기적으로 가나안 땅을 천재지변과 같은 방법으로 다 쓸어 버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에 들여 보내 잘 먹고 잘 살게 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하나님 백성을 잘 먹이려는 목적으로만 부르셨다면 그렇게 하셨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목적이 있었기에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멸하는 도구로 이스라엘을 쓰셨습니다.

보통 우리는 직장에서 상사들이나 선배들 혹은 부모님께 어떻게 하라는 지시나 명령을 받습니다.
이 때 어떤 사람들은 지시를 받은 것만 행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왜 그 지시를 했는지 생각하면서 좀 더 주도적으로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시킨 일 조차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만약 자신에게 일 시킨 사람의 의도와 그 뜻을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지시를 시키는 사람의 마음이 되어 그 주인처럼 일을 행하지 않을까요?

내가 만약 저 출애굽 시대에 태어나 저러한 명령이 내려진 상황에서 가나안에 들어갔다면 어떻게 했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요한 진보된 삶, 광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동식물의 소출, 그리고 그들이 섬기고 있는 음란한 신들과 문화..
그러나 다 죽일 수 밖에 없는 현실들.. 그리고 나의 칼에 죽임 당하는 저들..
그러면서 생각 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소위 세상적으로 잘나가는 것, 물질 만능주의, 쾌락과 음란을 추구하는 문화.. 이런 것을 싫어하시는 구나..
죄 없어 보이는 선량한 얼굴을 한 사람들을 내 칼로 죽이면서 손이 떨릴 것입니다.  연민을 느끼면서도 죽일 수 밖에 없는 현실..  사랑이라는 하나님도 이런 마음이실까?
그들에게서 목숨을 뺏는 잔인한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의도와 마음을 묵상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이렇게 세상적인 음란한 문화에 물든다면 하나님께서는 연민과 아픔의 눈물을 흘리시면서 우리를 심판하실 수 밖에 없으실 것이 아닐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범죄한 사람들을 심판할 때 하나님의 사람을 쓰실 수 있습니다.
그 때는 그 일을 시키신 하나님의 의도를 파악해야 합니다.  그러한 상황 가운데 두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심판하는 일이라면 그 일을 통해 나의 삶을 돌아보고 내 삶도 잘 못하면 이럴 수 있구나 하는 반성과 자기 성찰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심판 당하는 그들의 모습이 내 모습이 되어 그들과 동일시 한 모습으로 그 상황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심판할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동시에 묵상해야 합니다. 
불쌍하다고 심판하는 이것이 없다면 하나님의 공의는 무너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신의 모습일 때는 이해하지도 경험할 수도 없는 그 인간이 당할 수 있는 모든 고난을 몸소 체험하시면서 우리의 연약한 인간을 이해하셨습니다.
그냥 긍휼한 마음으로 바라보시는 것이 아닌 그 몸을 인간과 같이 되셔서 그렇게 모든 연약함을 감당하신 것입니다.

그 사랑하시는 인간을 대신해서 피 흘리심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나 뿐만 아니라 내 옆에 있는 내 이웃을 위해서도 동일하게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나 역시도 그 이웃을 위해 그들과 함께 그 사람이 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랑도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사랑이라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해야 합니다.
내가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니깐 상대에게 아메리카노를 선물하는 것으로 사랑이라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 상대가 커피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그 아메리카노는 사랑의 표현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내 사랑의 표현이 상대방을 모른다면 자칫 내 만족을 위한 사랑이 되어 버립니다.

중보기도라는 것 역시 그와 동일시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나의 모든 상황이 그 중보자의 당한 상황으로 받아 들이면서 그 사람의 아픔이 마치 내 아픔이 되어서 어떻게 하나님께 구해야 할지 알아 내는 것..
그리고 그렇게 그 사람의 모습으로 하나님을 부르짓는 것..  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 하나님께 구하는 것!!
이것이 중보기도의 올바른 모습이리라 생각합니다.

동일시함이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심판 당하는 사람의 마음과,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과 중보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마음..
이 마음이 바로 내가 되는 것입니다.

자유를 찾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우크라이나의 민주적 시위를 무력 점령의 명분을 삼은 러시아를 행태를 보면서 우크라이나를 중보합니다.
그리고 그 아픔 가운데 우리의 모습을 성찰 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묵상 해 봅니다.
세상 모든 아픔을 당한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뜻과 온전한 우리의 자세를 다시금 생각해 보며 기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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