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 어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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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요즘 주일 강해설교인 갈라디아서는 제게도 특별한 성경입니다.
저는 살면서 이상하게 이단이나 '도를 아십니까?'라 물어보는 사이비 종교 사람들과 접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자주 접하자 저도 모르게 그들과 많은 논쟁을 하게 되고 많이 논쟁하니깐 제 나름대로의 제 신앙에 대한 변론과 논리가 체계가 잡혀 그들에 대한 전투력이 상승했던 것 같습니다. 천리교, 신천지, 통일교 등등 많이 접했지만 그중에서도 오늘 제목과 같이 물어보는 사람과 있었던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ㅋ
어느 날 회사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중에 신호에 걸려 건널목에 대기 하고 있었습니다.
헌데 갑자기 어느 한 아주머니께서 가까이 오시더니 저더러 "안녕하세요? 하나님 어머니에 대해서 들어 보신 적이 있나요?"라고 질문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살다가 저는 그 때 생전 처음 하나님 어머니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살면서 하나님 아버지는 들어 봤어도 하나님 어머니는 생전에 듣도 보도 못했는데요."라 대답했더니 하나님 아버지가 아니고 하나님 어머니가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간이 나면 잠시 같이 가서 이야기 좀 하자는 것입니다. 저는 뭐 이런 황당한 경우가 있나 싶기도 하고 한 두 번 이런 일 겪은 것도 아니니 그러려니 하면서 도대체 무슨 경우인가 싶어 따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웬만하면 저와 같은 행동은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ㅋㅋ
잠시 걷자 바로 맞은 편에 "하나님의 교회"라는 곳으로 들어가더군요. 그러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왜 하나님 아버지가 아니고 하나님 어머니인지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저와 말싸움에 대답을 잘 못했던 아주머니께서 당황하시더니 잠시만 기다리시면 교회 전도사님을 데려오겠다고 사무실로 가는 것입니다.ㅋㅋ 그리고 나오시는 전도사님과 또 한참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 분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안되니깐 성경에 하나님 어머니가 나와있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제시했던 말씀이 바로 갈라디아서 4:26 말씀입니다.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라는 이 말씀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순간 당황스러웠습니다. 나름 성경을 많이 읽었다고 자부하였는데 갑자기 저런 말씀이 쑥 들어오니깐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 겁니다.
갈라디아서를 제대로 알아야 왜 저 말씀이 나왔는지 설명을 해 주겠는데 도무지 대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그 예수님이 하나님을 뭐라고 부르셨는지 알고 있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시고, 그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라 부르셨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 한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어머니라 불렀다면, 그리고 하나님을 어머니라고 부르라고 명령하셨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달리 어머니라 불렀겠지만 성경에는 어디에도 그것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계속 실랑이가 이어지자 전도사님은 여기서 믿음생활 할 마음이 있으면 남고 아니면 가시라고 하더군요..ㅋㅋ 나오면서 배웅하는 다른 사람에게 당신네 교회에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느냐고 물어도 대답을 안 해 주는 겁니다. 참 희한한 교회구나 싶어서 집에 와 찾아보니 바로 그 교회가 이단으로 유명한 안상홍 증인회 부인 장길자더군요..ㅋ
그리고 나서 읽었던 성경이 바로 갈라디아서입니다.
그렇게 파고 들었던 내용을 이제 여러분에게 이야기 해 주고 싶습니다.
갈라디아서는 송목사님 강해설교를 들어서 잘 아시겠지만 그 주제는 바로 믿음과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율법과 육체가 있습니다.
유대 관습에 쩔어 있는 사람이 예수님을 받아 들인다고 해서 그 습성이 한 순간에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헬라인인 디도에게 할례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베드로가 이방인과 식사를 같이 하다 유대 사람이 오는 것을 보고 그 자리를 뜬 것을 보고 크게 질타를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피로 그 이방 백성들을 품으셨다는 것을 인지시키는 한편 이방인에 대한 어떠한 편견도 가지지 말라는 것을 말씀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 보기에 좀처럼 하기 싫고, 거북한 일이지만 예수님께서 하셨기에 내가 그 일을 담담히 받아 들여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말씀을 하십니다.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갈라디아서 (2장 20~21절)
계속해서 갈라디아서는 율법과 육체의 표증으로 구원을 입는 것이 아니라 약속과 믿음으로 구원을 입는 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4장에 접어 들면서 그 두가지 대비되는 비유를 하갈과 사라를 들어 이야기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하나는 하갈이라는 육체를 통해 난 아들이고, 하나는 사라라는 약속을 통해 난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약속을 통해 나은 아들이라야 진정한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라를 지칭하는 이 말씀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4:26) 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이렇게 하나님 어머니로 갖다 붙이는 이단들은 참으로 대단한 것 같습니다.ㅎㅎ
우리에게 주는 갈라디아서의 교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어머니가 아니다라는 것이 이 성경의 교훈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편견과 율법을 깨라는 말씀이 이 성경의 큰 주제입니다.
우리에게도 유대인과 같은 편견 아닌 편견, 율법 아닌 율법이 있습니다.
교회 생활에 잘 어울리는 모습이 아니면 판단하고, 정죄하며, 심지어 구원이 없다라고까지 이야기하기를 서슴치 않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에 이르렀다는 것을 은혜로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자랑과 심지어 계급의식까지 갖고 남을 판단하지는 않습니까?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저번 주일 날 있었던 일입니다.
제 앞 자리에 한 형제가 예배 도중 자꾸 산만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예배에 집중을 할 수 없었습니다.
옆에 앉은 여자분을 끌어 안거나 입맞춤을 하려는 행동 등을 보면서 제게 분노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건너편 아저씨는 그 청년의 팔을 꺾어 놓고 자리에 앉히는데, 가만히 보니 세명이 한 가족 같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청년을 유심히 보니 자폐 증상을 가진 친구였던 것입니다. 옆에 여자분은 너무 젋어 보여서 여자친구인가 싶었는데 어머니였습니다.ㅠㅜ
그러면서 문득 드는 생각은 내가 갈라디아서에서 말씀하는 바로 그 율법주의자의 모습으로 비춰지더군요.
그 자폐증상의 친구가 내 예배를 방해한다고해서, 예배에 응당 해야할 예의를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분노가 일었던 제 모습에 유대 율법주의자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분명 그 자폐를 가진 친구는 예수님께서 품으셨던 이방인인 것입니다. 제가 이방인을 제 관습과 율법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던 제 모습이 너무 가증스러웠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백성이고 내 자녀라 품으신 사람을 어찌 내가 판단하고 내 마음에 안든다고 내 칠수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모습도 이러한 신앙의 모습이 아닌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교회의 신앙생활 교회생활에 익숙하지 못한 모습에 분노하는 우리가 있다면 다시금 내 모습을 돌아 보았으면 합니다.
이미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존재라는 것을 한 순간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에게 싫은 모습이지만 예수님께서 품으셨다는 그 조건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그 사람을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 그런 예수님의 모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갈라디아서는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하나의 방법을 알려 주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께 이끌리는 삶입니다.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갈라디아서 5:16~18)
우리의 삶도 죽은 율법의 조항을 따르는 삶이 아닌 내 가슴에 살아계신 성령님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언제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살아가는 그런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그리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갈라디아서는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하나의 방법을 알려 주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께 이끌리는 삶입니다.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갈라디아서 5:16~18)
우리의 삶도 죽은 율법의 조항을 따르는 삶이 아닌 내 가슴에 살아계신 성령님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언제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살아가는 그런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그리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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