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노 -
김집사의 Bible Insights
- 분노 -
15 저희가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16 아무나 기구를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치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멸할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기이히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마가복음 11:15~18)
믿음의 동역자인 한 형제와 함께 시간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는 회사에서 믿는 사람이기에 착하게 있으니깐 자기를 호구로 아는 사람이 있다고 벼르고 있는데, 언제 한번 폭발해서 자신이 녹녹치 않는 사람임을 보여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분노에 대해 어느 정도 합리화 하면서 예수님도 분노하신 적이 있다며 오늘 저 성경구절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이 친구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 본문을 그렇게 이 친구와 같이 많이들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신 것 같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신약의 예수님 시대에 있던 율법사들이나 서기관, 바리세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아주 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예배 드리러 오는 사람들 통해 자신들의 이권 또한 엄청나게 챙기고 누리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멀리 타지에서 오는 예배자들을 위해 성전 근처에서 예배에 필요한 제사의 재물을 파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제공하고 거기서 나오는 이익을 암암리에 챙기는 것입니다. 성전에 가까울수록 프리미엄이 더 붙는 것은 두 말할 여지도 없겠죠? 그러다가 나중에는 이것이 성전 안에 까지 들어오게 되고, 성전은 돈을 바꿔주는 사람들, 제물을 파는 사람들, 온갖 성전 기구들을 매매 하는 사람들로 넘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분명 잘못된 것임에도 아무도 나서서 "이거 잘못되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중심에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이권 개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함부로 건들 수 없는 그들의 성역인 것이죠.
그런데 어디 촌구석에서 온 이상한 청년 하나가 와서 미친척하고 성전을 둘러 엎고 욕을 해 대니 할 말이 있겠습니까?
분명 둘러 엎은 것은 그 청년이 잘못한 것이지만, 그 둘러 엎는 것이 정말 성전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 맞기 때문에 아무도 건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분노는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음에도 이권에 휘둘리고, 권력이 두려워 아무런 말도 못하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진정한 하나님 사랑과 옳은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행동으로 보여 준 것입니다.
우리가 분노를 해야하는 정당한 이유로 저 구절을 사용하라고 이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정당한 때에 정당한 이유로 사회의 부조리나 교회의 불합리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옳은 것을 위해 목소리를 내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멸할까 하고 꾀하니(막11:18)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더 미움을 받고, 죽이고자 하는 계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제가 구지 언급을 하지 않아도 이런 예는 요즘 우리 시대에도 버젓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폭력과 위험에 처한 이웃을 구하지 않는 것, 잘못된 사회 관행과 악습에 잘못을 지적하지 않는 것, 분명 잘못된 것임에도 내 이권이 개입되어 있기에 묵인하는 것..
악한 상황과 잘못을 보고 묵인하고 가만히 있는 것은 그 악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깨어 있는 소수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이 일에 자신을 내어 놓고 기꺼이 희생합니다.
죽음이라는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변화는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잘못되어가는 불합리한 일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에 그것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었습니다.
또한 진정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 놓았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목숨을 내어 놓을 수 있습니까? 무엇을 위해 분노할 수 있습니까?
나 자신을 위해서 입니까? 아니면 정의와 진리와 사랑을 위해서 입니까?
오늘도 예수님의 분노를 생각하면서 내 분노의 원인에 대해 묵상해 봅니다.
나를 위해서는 분노할 수 있으나 사회 정의와 하나님을 위해 분노하지 못하는 비겁한 나의 모습이 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많은 이권을 위해 권력의 종이 되어 혼탁해져만 가는 세상 속에
참 목소리를 내지 못하며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되고 있지 않는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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