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실 -
김간사의 Bible Insights
- 상실 -
15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16 인자야 내가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을 한 번 쳐서 빼앗으리니 너는 슬퍼하거나 울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하지 말며
17 죽은 자들을 위하여 슬퍼하지 말고 종용히 탄식하며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발에 신을 신고 입술을 가리우지 말고 사람의 부의하는 식물을 먹지 말라 하신지라
18 내가 아침에 백성에게 고하였더니 저녁에 내 아내가 죽기로 아침에 내가 받은 명령대로 행하매
19 백성이 내게 이르되 네가 행하는 이 일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되는지 너는 우리에게 고하지 아니하겠느냐 하므로
에스겔 24:15~19
당시 에스겔은 자신의 행위나 퍼포먼스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에게 대언하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은 선지자 에스겔에게 너무 가혹한 말씀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에스겔에게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얼마나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어 잘 알 수 없지만 말씀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을 한 번 쳐서 빼앗으리니.."라는 말씀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는 심정..
사람에게 가장 큰 상실은 배우자의 상실이라 들었습니다.
가족 중에서도 부모님, 자녀의 상실도 물론 큰 아픔이겠지만 사랑하는 배우자의 상실은 더 없는 아픔이리라 생각됩니다.
그런 마음을 아실 것 같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대언하는 사랑하는 선지자에게 이와 같은 명령을 하셨다는게 믿기지 않습니다.
더 가혹한 것은 그 현실을 받아 들이면서 절대로 슬퍼하거나 울거나 눈물을 보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묵상 해 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이렇게 가혹한 상황을 만들어 이스라엘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성경에서의 결론은 구절 하반부에 등장합니다. 너희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아닌 눈에 보이는, 마음을 빼앗긴 그것을 일시에 제거하여 버림으로 허망함과 허탈을 경험할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드러난 단편적인 의미 보다는 좀 더 깊은 하나님의 마음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앗수르와 바벨론을 통하여 사랑하는 이스라엘을 멸망 시키면서 그 사랑 이스라엘을 잃어 버리셨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은 사랑..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라 유일하게 부를 수 있는 그 아름답고도 외로운 사랑을 상실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슬퍼하지 말아야 합니다.
눈물도 흘리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를 징벌하시면서 마음 속으로 밖에 울 수 없었던 그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하나님께 인자(Son of man)라 불리웠던 선지자 에스겔은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그 말씀을 그렇게 행동으로 순종하지 않았을까요?
동시에 이것은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을 때도 그러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내 사랑하는 자요, 기뻐하는 자라 표현한 예수님은 십자가 지시기 전날 밤 그 십자가의 잔 받는 것을 거두어 주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끝내 거절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구절에서 예수님의 고통을 묵상 하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받으시는 마음을 묵상 해 봅니다.
사랑하는 하나뿐인 아들을 죽일 수 밖에 없는 아픔..
그 십자가에서 하나님을 향해 왜 저를 버리셨습니까? 외치는 그 모습 속에 하나님의 마음은 무너지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울 수 없었습니다. 눈물도 흘려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의 죄가, 이 세상의 인간이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오늘도 그 놀라운 하나님의 마음을 묵상 해 봅니다.
도저히 인간으로 참을 수 없는 상실의 아픔이 바로 하나님께서 당한 아픔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아려옵니다.
그 아픔과 눈물을 참을 수 밖에 없으신 하나님..
그 결과로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놀라운 구원의 은혜..
바로 당신과 저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임을 다시금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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